본문 바로가기
시시콜콜한 이야기/옛날 글 모음

20대여 겨울잠에서 깨어나라 - 독립영화 '반달곰'

by 윤춘 2021. 6. 11.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받은 '해운대 소녀'의 이정홍감독의 두번째 작품 '반달곰'은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단일상영중인 영화다. 

 

인디스페이스는 시민들의 출자금으로 만들어져 서울에 단 한 군데 밖에 없는 독립영화 전용관이다. 날로 커져가는 영화시장의 분위기와는 다른 인디스페이스는 관객보다 직원이 많을 정도로 한산하다. 영화관 안에는 출자금을 낸 시민들의 이름이 걸려있는 의자가 눈에 띈다. 보통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인디 스페이스 홍보팀장 박현지씨는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이렇게 특이한 영화관은 처음본다는 듯 너무나 신기해 하신다"며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이 영화관의 목적이다"라고 전했다.

 

21일 오후 2시, 영화관 안은 한적한 공기가 맴돈다. 단 한명을 위해 영화를 틀어주는 것이다. 적막한 분위기 속 반달곰이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가 시작한다.

 

주인공은 대학교를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누나의 집에 얹혀살며 pc방에서 하루를 보내는 전형적인 백수의 표본이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주인공의 성격은 그대로 드러난다. 분리수거를 할 때도 행동이 너무 느려 결국 누나가 다 하게 만들고 머리 염색을 할때도 우물쭈물하며 누나가 정해준 색으로 하고 온다. 문화평론가 듀나는 이런 주인공 원석을 두고 "한국의 20대 남자가 아무 의욕없는 백수일 때 어떤 모습일지를 가장 전형적이고 완벽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다"라고 묘사했다. 

 

영화는 주인공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누나가 주선해준 치킨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만 과거 한 때 타봤다던 오토바이는 시동조차 켜지 못한다. 시동을 켜지 못하고 안달복달하는 원석의 모습은 귀엽다 못해 어이가 없어 웃음까지 나게 한다. 설상가상으로 배달 중에 오토바이 열쇠마저 잊어버린다. 주인공의 얼굴은 넋을 놓은 듯 한 표정이다. 열쇠를 찾는 과정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을 의심하게 되는데 나중엔 그 학생에게 구타를 당하고 만다. 중학생에게 구타를 당하는 모습에서 주인공의 무기력함과 관객의 탄식은 절정에 이른다. 

 

이 모든 장면은 독립영화의 특성상 옆에있는 사람이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한 것 같이 날 것 그대로 담아낸다. 영화 이야기 자체로도 한숨이 저절로 나는데 카메라마저 너무나 사실적으로 장면을 담아내다 보니 관객들로 하여금 자기 주위엔 저런 사람이 없나 돌아보게 될 정도로 몰입된다. 또한 보통 영화와 달리 반달곰에서는 카메라가 계속 움직인다. 주인공이 두 팔을 옆으로 뻗고 휘청휘청 도로를 건너는 장면에서는 아예 그를 따라 카메라도 좌우로 휘청거린다. 제작자 인디스토리의 기획팀장 김화범씨는 이와 같은 영화의 특징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정해진 앵글 안에서 연기하는 방법보다는 영화내내 카메라가 움직이는 방식을 취해 배우의 감정을 잘 살리고 있다"며 "카메라의 수없는 움직임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20대의 삶의 형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전했다.

 

주인공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다시 pc방으로 향한다. 아늑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선 어떠한 먹이도 얻을 수 없고 잠만 자야 하는 동굴이 그에게는 pc방인 것이다. 화가나 pc방으로 찾아온 누나와 그는 큰 말다툼을 벌인다. 하지만 no cave라는 부제에 걸맞게 며칠 뒤 주인공은 다시 치킨집으로 찾아가 느릿한 동작으로 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동굴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굴에 너무 오래 있으면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전에 어서 동굴밖으로 나오길 바라는 감독의 바람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고스란이 드러난다.

 

영화의 계절적 배경은 겨울이다. 사회에 나가기 전 웅크려져 있는 20대의 모습은 마치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는 반달곰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번해도 반달곰의 겨울잠은 예년보다 몇 주 더 일찍 시작됐다고 한다. 강추위와 적설에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 졌기 때문이다. 사회가 삭막해지고 팍팍해 질수록 20대 들의 겨울잠도 길어지지 않을까.

 

'반달곰'은 자의 혹은 타의로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청춘과 영화가 만난 작품이다. 우연찮게 한국 독립영화의 위기, 대한민국 청춘의 위기를 동시에 보여준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면으로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표현기법, 영상미등 모든 것을 떠나 이 점만으로도 영화 반달곰은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아주대 학보에 실렸던 기사임을 밝힙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