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시콜콜한 이야기43

낮에는 업적을, 밤에는 마음을 묻습니다 나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낮에는 업적을 묻고, 밤이 되면 마음을 묻는다.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세상에 이런 발명가가, 이런 사업가가, 이런 장인이 있다는 것을 알린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왜 이 일을 하세요. 일을 하면서 언제 가장 뿌듯하셨어요. 혹은 언제 가장 힘드셨어요. 앞으로 선생님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세상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구나. 다들 자신의 삶을 정말 잘 살아가고 있구나. 자기 색깔을 어찌 그렇게 일찍 깨닫고 저런 선택을 했을까. 매일이 감탄의 연속이다. 그렇게 그 사람이 가장 빛나는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포장해주는 것이 나의 낮이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모두가 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찾아오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자그마한 방으로 몸을 이끈다. 빛으로 .. 2021. 12. 12.
부모님은 무성영화처럼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가족은 유난히 실수가 잦다. 좋은 말이 가득해도 모자란 자리에서 반드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거나, 이쯤이면 번듯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야 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돈을 벌고 싶지 않다고 다짐을 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그들의 수많은 실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도 어찌하지 못하는 제 속의 이야기를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정면으로 거부하며 듣고 또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을 버티고 버티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용서와 '어떻게 사람이 그래'라는 옹졸함을 넘나들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뻔한 주문과 '어떻게 가족이 그래'라는 진심 어린 분.. 2021. 9. 22.
하늘은 날씨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매일 바뀌는 날씨를 보다 보면 마치 하늘이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가 쨍쨍한 맑은 날에는 세상 모든 것들과 놀고 싶어 하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에는 큰 죄를 지은 것을 마구 혼내는 것처럼 안개가 잔뜩 낀 날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신들과 말도 섞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구름이 많이 끼어 곧 비가 올 것 같은 날에는 자기가 많이 우울하니 좀 위로를 해달라는 것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오늘처럼 조용히 부슬비를 내리는 날에는 꼭 하늘이 당신을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낀다. 거세게 다가가기보다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당신이 좋아할 만큼, 그렇게 좋아하다 보면 어느샌가 옷이 모두 젖어있을 만큼의 비를 내.. 2021. 9. 7.
제정신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내가 지금 무엇을 듣고 있나,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나, 매 순간을 제정신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물음을 가지며 온전히 깨어있어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나를 잃지 않고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지만 사실상 수많은 과업 속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사람에게 이 모든 질문은 사치일 수도 있다.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퇴근을 한다는 말은, 한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하루에 족히 몇십 개는 된다는 이야기였고, 최대한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효율을 내기 위해 온 신경이 곤두선 순간이 족히 몇 시간은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머릿속은 뿌옇게 회색 빛깔이 되어있어, 명상 조차, 운동 조차, 심지어 잠 조차도 찾아 오지 않는 저녁을.. 2021. 9. 3.
비워낸 것 # 인간관계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내가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상을 열어내는 일이다. 오늘은 무엇을 먹었는지, 어제는 누구를 만났는지, 내일은 어떤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보낼 것인지. 당신이 지겹도록 흘려보내는 매일이 나에겐 이리저리 파헤치며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상한 나라의 동굴과 같았다. 이런 마음이면 누구와 대화를 나누어도 거리낌이 없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묻는다. 그렇게 누군가를 알아가고, 나를 알려내며 발견하는 공통점과 차이점 사이에서 세 번째 동굴을 만들어내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수많은 활동을 하며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사람이 1천 명을 훌쩍 넘었던 대학 시절. 항상 웃음이 넘쳤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매우 즐겼다. 이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저 친.. 2021. 8. 22.
비워낸 것 #집 지난 2년간, 나는 살면서 가장 예쁜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누리며 살아왔다. 수도권에서 조금 내려갔을 뿐인데, 같은 가격이어도 훨씬 좋은 집을 구할 수가 있었던 덕이다. 큰 창문이 집 중앙에 위치했고, 매일 그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가구들을 밝혔다. 큰 마음을 먹고 산 흰 피아노는 환한 집을 더욱 희게 빛내었고. 혼자서 방 두개와 거실이 있는 집을 누리는 것은 내 나이와 직업에 비해 다소 과한 일이기는 하였지만, 좋은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을 그 집에서 배워 나갔다. 그렇게 호사를 누리던 사람이 직업이라는 것을 구하고, 세상 비싼 집값의 수도권으로 이사를 했고, 돈은 없었다. 같은 가격으로는 집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여야 했다. 밝디 밝은 집에서 나름의 작은.. 2021. 8. 22.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른다면 오래전, 공무원 준비를 하던 친구가 "왜 공부를 하다 보면 자꾸 미워하는 사람 생각이 나지? 옛날에 싫었던 기억이 자꾸 생각나"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일정 시간 이상 공부를 하다 보면 못된 말을 했던 사람, 싫어하는 행동을 한 사람, 짜증 났던 경험, 창피했던 경험 등 부정적인 감정을 깨우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왜 자꾸 이런 생각을 할까' 자책하며 또 다른 괴로움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내가 힘들어서 그렇구나.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순간을 떠올려보면, 모두 '일정 시간' 이상 공부를 하고 난 이후였는데, 이는 곧 내 체력을 다 쓰고 난 이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즉, 몸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 2021. 8. 19.
비워낸 것 # 술 처음 술을 마신 날은 수능 100일 전, 공부를 핑계로 친척 집에 가지 않을 구실을 만들어낸 추석날이었다. 친구들 중 나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이유로 내 얼굴을 간판 삼아 동네 슈퍼 몇 군데를 돌아다녀보았지만 고등학생은 어쩔 수 없이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낸 아이디어는 치킨 배달. 가정집으로 치킨 배달을 시킬 때 술을 같이 시키면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는 나름 신빙성이 있었다. '아빠 맥주 하나 시키라고?'라는 멘트를 날리며 능청스러운 연기와 함께 배달된 소주 2병과 맥주 2000L. 처음 술을 먹는 여자 고등학생 3명이 먹기에는 다소 많은 양이었고, 한 친구는 뭐가 한이라도 맺혔는지 큰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 그냥 벌컥벌컥 목구멍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결과는.. 2021. 8. 8.
비워낸 것 # 3천원짜리 옷 아침 댓바람부터 옷장의 옷을 뒤져 당근 마켓에 3천 원 5천 원에 올려대기 시작했다. 나름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는 옷을 찾아 세탁소에서 주는 옷걸이로 화장실 문에 대충 걸어 사진을 찍어보니 구김이며 오염이며 세월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보정은 없다. 언젠간 팔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쓱쓱 올려댄다. 나름 비싸게 산 옷은 5천 원에, 그럭저럭 적당한 가격에 산 옷은 3천 원에 올려본다. 대충 찍은 사진에 대충 측정한 가격으로 글을 올리고, 아침밥을 먹다보니 진동이 여럿 울려댄다. 당근 마켓으로 거래를 몇 번 하다 보니 이제는 노란 카카오톡 알람보다 반가운 것이 주황색의 당근들이다. "사이즈가 몇이에요?" 제일 저렴하게 올린 3천원짜리 옷에 문의가 들어왔다. "M이에요." "55-66정도라는 거죠?" ".. 2021. 8. 2.
정신적 미니멀리즘 연습하기 유난히 원하는 게 많은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마트에 가면 갖고 싶은 걸 사달라고 떼굴떼굴 구르며 온 동네를 시끄럽게 했다고 한다. 거기에 급한 성격까지 더해져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걸 눈앞에 가져오라고 성화를 부렸다는데, 말만 들어도 지독한 사람으로 자라날 게 뻔한 아이다. 이 성질은 성인이 되어 갈수록 점점 더 강해졌다.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갖고야 마는 성질.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시절, 그때는 모든 학생들이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하는 반 강제적인 시스템이 있었다. 아마 학생들이 야자에 참석을 안 하면 담임선생님에게 불이익이 가는 형태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나는 당시 공부를 하는 데에 학교보다 독서실에 가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하여 온갖 이유를 들이대고 야자를.. 2021.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