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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옛날 글 모음

예술, 통通 하였느냐

by 윤춘 2021. 6. 11.

사회가 발전하고 의식주가 해결되자 더 질 높은 삶을 살기 위해 사람들은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문화는 시 공간을 초월하는 매체인 인터넷과 맞물려 더욱더 접근성이 커지고 시민들의 생활 곳곳에 파고들었다. 그러나 아직 사람들이 다가가지 못하는 문화가 있다. 바로 예술이다. ‘예술’은 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으로 정의된다. 예술하면 유명한 화백이 그린 그림과 돌을 깎아 만든 조각품 같이 어렵고 소수 부류의 사람들만 즐기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제는 바야흐로 ‘소통’의 시대이다. 소통하지 못하는 문화는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 시대의 흐름에 맞춰 예술과 대중이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프리마켓’이다. 중고물품을 파는 플리마켓(flea market)과 혼동할 수 있는 프리마켓(free market)은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만나 소통하고 교류하는 자생예술시장을 뜻한다. 일상 속에서 예술을 발견하고 예술 속에서 일상을 발견하여 서로의 벽을 허무는 ‘장’인 것이다.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프리마켓에서 접할 수 있는 작품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생활창작품’이다. 생활용품에 예술을 접한 작품일 수도 있고 작품 자체를 일상 속에서 곁에 두고 간직 할 수 있게 만든 것도 있다. 창작한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단순한 소비 형태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직접 주인공이 돼 작품을 만든다. 

 

보이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 음악예술을 하는 공연자들 또한 예술가로써 프리마켓에 참여한다. 음악으로 예술시장의 분위기를 돋궈주고 춤과 퍼포먼스가 더해져 더욱 다양한 장르의 창작행위를 선보인다. 2002년 홍대에서 시작해 올해 11년째에 접어든 프리마켓은 홍대뿐만 아니라 여러 영화제와 페스티벌에서 개최돼 예술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나 함께해 ‘소통의 장’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겉으로는 평등을 외치지만 깊게 파고들수록 그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시대에서 예술시장 프리마켓은 문화계층을 허무는 진정한 '평등'을 만들고 있다. 

 

올해 마지막 프리마켓을 가다.

주말로 인해 지하철부터 사람이 북적북적하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길을 해맨 끝에 겨우 '홍대 앞 놀이터'에 도착했다. 놀이터의 분위기를 더욱 활기차게 만들어 주는 진한 분홍색의 플랜카드와 표지판이 눈에 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놀이터는 처음 봤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과 노상점이 꽉 차있다. 조금 더 가까이 들어가 보니 노점상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직접 손으로 만든 '작품' 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자리에서 직접 물건에 그림을 그리며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도 있고 작업실에서 미리 만들어 온 이들도 있다. 작품들이 아기자기하고 개성이 넘쳐 작가의 세심한 손길이 한눈에 느껴진다.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 진 것들이라 다소 값이 나간다. 그러나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가격은 그저 작품이 내 손에 들어오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만 여겨진다. 이렇게 프리마켓에 들어온 이상 우리의 가방안에는 예술 작품이 하나씩 담길 수 밖에 없다. 

 

작품의 이야기? 작가의 이야기!

사람들도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듯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들도 똑같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모두 이야기가 있는 아이들이에요'라는 귀여운 문구와 함께 전시돼 있는 작은 인형들이 눈에 띈다. “무슨 이야기가 있는 거에요?”라고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게 이야기를 해준다. 원래 인형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를 전시하다가 반응이 좋아 실제 인형으로 만들어졌다는 작품, 베게 밑에 두고 자면 걱정이 없어진다는 걱정인형, 갖고 있는 꿈을 이루게 해준다는 된다인형 등 모든 작품이 그냥 만들어진 것은 없었다. 또한 이를 설명해주는 작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얼마나 작품에 애정을 갖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처음으로 직접 작품을 만든 작가와 이야기를 하고 만든 이의 사랑이 담긴 것들을 보니 예술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일상생활에서도 가깝게 다가 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손님이 곧 예술작품

옆을 돌아보니 길게 줄이 서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손님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화가들이 모여있다. 캐리커쳐나 일반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도 있었지만 유난히 줄이 긴 곳이 눈에 띈다. 지금까지 본 초상화와는 많이 달랐다. 바로 '낯낯이 초상화'였다. 낯낯이 초상화는 유리판에 얼굴을 대고 투명 셀로판지에 매직으로 직접 얼굴선을 따라 초상화를 그려준다. 화가와 굉장히 가깝게 밀착해서 그림을 그려 다소 민망해 하는 손님도 있다. 이 광경이 매우 신기하게 느껴졌는지 여기저기서 플래쉬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고 모두 한입으로 '우와, 신기하다'를 연발한다. 그림은 쓱쓱 빠른 시간 안에 그려졌지만 물리적 거리가 좁혀져서 그런지 화가와 모델이 호흡을 맞춰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간다.

  

세상에서 예술이 제일 쉬웠어요

예술작품 하면 뭔가 비싸 보이고 어려워 보인다. 그럴듯한 해석이 필요할 것 같고 작가가 의도한 바를 파악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프리마켓에서 다가온 작품들은 달랐다. 일상과 예술이 만난다는 예술시장 프리마켓의 문구에 걸맞게 홍대 한 가운데에 펼쳐진 예술의 장은 더 이상 그들만의 놀이터가 아니다. 존재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의미 있는 작품이자 곁에 두고 싶은 생활용품으로 다가왔다. 아직 예술에 대한 벽이 완전히 허물어지지는 않지만 작품을 보며 ‘갖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구입을 하고 일상에서 계속 접하다 보면 언젠간 나도 예술가가 돼있을 것 같다.

 

*아주대 학보에 실렸던 기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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