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이야기/잡생각11 낮에는 업적을, 밤에는 마음을 묻습니다 나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낮에는 업적을 묻고, 밤이 되면 마음을 묻는다.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세상에 이런 발명가가, 이런 사업가가, 이런 장인이 있다는 것을 알린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왜 이 일을 하세요. 일을 하면서 언제 가장 뿌듯하셨어요. 혹은 언제 가장 힘드셨어요. 앞으로 선생님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세상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구나. 다들 자신의 삶을 정말 잘 살아가고 있구나. 자기 색깔을 어찌 그렇게 일찍 깨닫고 저런 선택을 했을까. 매일이 감탄의 연속이다. 그렇게 그 사람이 가장 빛나는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포장해주는 것이 나의 낮이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모두가 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찾아오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자그마한 방으로 몸을 이끈다. 빛으로 .. 2021. 12. 12. 부모님은 무성영화처럼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가족은 유난히 실수가 잦다. 좋은 말이 가득해도 모자란 자리에서 반드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거나, 이쯤이면 번듯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야 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돈을 벌고 싶지 않다고 다짐을 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그들의 수많은 실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도 어찌하지 못하는 제 속의 이야기를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정면으로 거부하며 듣고 또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을 버티고 버티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용서와 '어떻게 사람이 그래'라는 옹졸함을 넘나들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뻔한 주문과 '어떻게 가족이 그래'라는 진심 어린 분.. 2021. 9. 22. 하늘은 날씨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매일 바뀌는 날씨를 보다 보면 마치 하늘이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가 쨍쨍한 맑은 날에는 세상 모든 것들과 놀고 싶어 하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에는 큰 죄를 지은 것을 마구 혼내는 것처럼 안개가 잔뜩 낀 날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신들과 말도 섞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구름이 많이 끼어 곧 비가 올 것 같은 날에는 자기가 많이 우울하니 좀 위로를 해달라는 것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오늘처럼 조용히 부슬비를 내리는 날에는 꼭 하늘이 당신을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낀다. 거세게 다가가기보다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당신이 좋아할 만큼, 그렇게 좋아하다 보면 어느샌가 옷이 모두 젖어있을 만큼의 비를 내.. 2021. 9. 7. 제정신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내가 지금 무엇을 듣고 있나,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나, 매 순간을 제정신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물음을 가지며 온전히 깨어있어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나를 잃지 않고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지만 사실상 수많은 과업 속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사람에게 이 모든 질문은 사치일 수도 있다.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퇴근을 한다는 말은, 한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하루에 족히 몇십 개는 된다는 이야기였고, 최대한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효율을 내기 위해 온 신경이 곤두선 순간이 족히 몇 시간은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머릿속은 뿌옇게 회색 빛깔이 되어있어, 명상 조차, 운동 조차, 심지어 잠 조차도 찾아 오지 않는 저녁을.. 2021. 9. 3. 외로움은 익숙한 도시에서 찾아온다 외로움은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가장 드물게 나타나는 감정이다. 대학교에 입학하여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혼자 살기. 유럽으로 여행을 가기. 내일로 여행을 떠나기. 모두 혼자서,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들이다. 실제로 모든 버킷리스트를 거리낌 없이 해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곳을 다니고, 때로는 철저하게 혼자 이방인이라는 사실조차 나를 들뜨게 했다. "여기 워킹홀리데이 와서 이렇게 잘 지내는 사람 처음 봐요" 독일에서 십수 년을 보낸 한 한국인은 나에게 이런 칭찬을 건넸다. 무언가 허전한 감정이 들면 이 감정의 정체는 외로움이 아니라, 심심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혼자 있는 것은 아무래도 좋지만 심심한 건 참을 수가 없다. 헛헛한 마음이 들면 바로 몸을 움직여 집안일을 하거나, 책.. 2021. 7. 4. 요즘 생각 요즘은 이런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다. 어떤 감정 속에서 휘몰아쳐도 혼자서 그 모든 것을 느껴내는 순간, 그게 슬픔이던 기쁨이던 놀라움이던 나에게 표현하고 나에게 쏟아내면 그걸로 되었다는 걸 안 순간, 갑작스럽게 길을 잃어도 누구도 나를 찾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스스로 헤매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안 순간, 철없는 깊은 감정은 이제 쉽게 이야기하지 않아야겠다는 깨달음이 온 순간, 때로는 깊고 깊은 것 보다, 얕고 얕은 것이 우리 사이를 이롭게 한다는 것을 안 순간, 너무 많은 것을 궁금해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느낀 순간, 때로는 그냥 모른채 하늘을 보며 오늘의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를 아끼는 방법임을 안 순간, 의미가 있는 것을.. 2021. 7. 4. 지긋지긋한 지방의 한 대도시, 청주를 탈출하며 - 옹졸한 경기러의 지방 탐방기 "고향이 어디세요?" "경기도 어디예요" "우와"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어떤 도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만으로 탄성 소리를 듣는 건 뭔가 이상했지만, 생각보다 사람을 들뜨게 하는 일이었다. 가끔은 내가 노력한 것으로 칭찬을 받을 때 보다 더 근본 없는 자부심을 주기도 했을 정도로. 나의 두 번째 모교는 충청북도 청주의 한 국립대였다. 85만의 인구를 자랑하며 바다 빼고 모든 것이 있는 도시였다. 가끔은 '청주가 어디야? 충주?'라고 한 번씩 되물어야 그런 도시가 한국에 있구나 라는 걸 상기하게되는 지역이었지만, 청주는 나름 탄탄한 인프라를 자랑했으며 사투리를 쓰는 사람도 드물어 이질감마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 적응하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다. 처음 몇 달은 주말마다.. 2021. 6. 23. 내 인생을 바꾼 사소하고 위대한 선택 아주 작은 변화를 주어 본다. 방문에 작은 조화를 달아본다거나, 못생긴 부엌에 예쁜 소품을 걸어본다. 새끼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해보거나, 오른손가락에 실반지를 하나 끼워본다. 아침에 일어날 때 이불을 정리해본다거나, 짧은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해본다. 아주 사소해보이지만 이 모든 것은 부지런함이라는 미덕을 갖추어야 실현이 가능했다. '이렇게 사소한 게 무슨 의미가 있어'라며 (인생을 바꿀 만한 거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면 절대 몸을 움직이지 않았던 수십 년. 하지만 이 재빠른 두뇌 회전은 결국 '하기 싫어'라는 게으른 변명에 불과했었다. 5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워커홀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는 것이 귀찮아 차라리 일을 하고야 마는.. 2021. 6. 17. 우주를 도대체 뭐하러 가 우연히 우주탐사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인간이 화성을 가고자 한건 언제부터이며 화성을 가고자 하는 이유는 지구의 자원 고갈과 일자리 창출과 인류에 대한 희망 때문 어쩌고 저쩌고 화성을 가기 위한 우주선 제작에는 얼만큼의 연료가 필요하며 아직 인간은 그 연료를 담아낼 기술과 자원이 부족하여 어쩌고 저쩌고 아니 자원 고갈로 인한 인류 멸종이 두려워 화성에 가겠다면서, 우주선을 하나 보내는 데에 그만큼이나 연료가 든다고? 이 무슨 북 치고 장구 치다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며 병 주고 약 주는 격인가 그냥 애초에 조금 덜 움직이고, 덜 쓰고, 개발도 안 하고, 우주도 안 가고, 하면 안 되나? 인간은 너무 열심히 사는 것 같다. (곰곰) 아주 오래전, 한국에 전쟁이 날 것 같다는 괴담이 돈 적이 있다. 어린.. 2021. 6. 12. 사형기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전기 파리채와 기술철학사이에서 도무지 벌레라는 종족은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왜 그렇게 나랑 다르게 생긴 거야? 도대체 어디로 날아갈지를 모르겠는 그 날갯짓은 세상 무엇보다 예측 불가한 일이다. 한 번은 방충망에 엄지손가락만 한 벌레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며 밖으로 내보내려 한 날이 있었다. 이런 말 하기 참 남사스럽지만 그 당시 나는 모기도 손으로 잡질 못했다. 뭔가가 내 손에서 터지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그런 사람이 거대한 벌레를 보고 제정신이었겠는가? 두 시간을 싸웠다. 이 아이를 어떻게든 손대지 않고 창문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창문을 닫은 뒤 방충망을 열어 놓고 기다렸다. 소용이 없다. 용기를 내서 책으로 잡아보려 애를 써보았다. 도저히 이 아이를 터트릴 자신이 없다. 결국 동생이 벌레를 잡아주고 사건은.. 2021. 5. 12.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