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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잡생각

지긋지긋한 지방의 한 대도시, 청주를 탈출하며 - 옹졸한 경기러의 지방 탐방기

by 윤춘 2021. 6. 23.

"고향이 어디세요?" "경기도 어디예요" 

 

"우와"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어떤 도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만으로 탄성 소리를 듣는 건 뭔가 이상했지만, 생각보다 사람을 들뜨게 하는 일이었다. 가끔은 내가 노력한 것으로 칭찬을 받을 때 보다 더 근본 없는 자부심을 주기도 했을 정도로. 


나의 두 번째 모교는 충청북도 청주의 한 국립대였다. 85만의 인구를 자랑하며 바다 빼고 모든 것이 있는 도시였다. 가끔은 '청주가 어디야? 충주?'라고 한 번씩 되물어야 그런 도시가 한국에 있구나 라는 걸 상기하게되는 지역이었지만, 청주는 나름 탄탄한 인프라를 자랑했으며 사투리를 쓰는 사람도 드물어 이질감마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 적응하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다. 처음 몇 달은 주말마다 서울의 빽빽한 빌딩들을 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데이트를 했던 광활한 건물과 대로, 친구들과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유명 카페. 거대한 것이란 거대한 것은 모두 보고 싶었다. 오죽하면 영화를 보러 용산 cgv의 아이맥스관까지 가서 그 끝판왕을 즐기고 와야 직성이 풀렸을까. 

 

수도권에 태어난 사람이 타지역으로 생활의 터전을 옮겼을 때 따라오는 부작용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향수는 서울에 도착하면 빠르게 날아가는 것이었다면, 타 지역에서 나의 고향을 밝혔을 때 따라온 반응들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서 질척이고 있다. 

 

두 가지의 반응이었다. (물론 무반응도 있다.)

 

첫째, 부러움.

"청주에서 제일 비싼 집값이랑 선생님네 집 값이랑 뭐 비슷하지 않아요~?" "우와 서울 사람~~(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경기도민이다)" 같은 반응들. 대놓고 부러워하거나, 혹은 숨기면서 부러워한다. 처음에는 이게 우쭐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것조차 낯설었지만, 점점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늘어가는 옹졸한 마음을 발견한다. 

 

둘째, 질투. 

한 동료와 각 도시에서 유명한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당시 '공주대'라는 곳이 조금 생소하여 그런 학교를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아 이래서 서울 애들은 안 된다니까. 그걸 어떻게 모르냐!" 

 

또 하나의 에피소드, 

 

"나 이번주에 집으로 올라가려고"라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한 뒤 돌아오는 대답은, 

 

"나는 그 올라간다는 말이 싫어. 왜 올라가는 거야? 마치 서울이 더 높다는 것처럼 들리잖아. 지구를 거꾸로 두면 여기가 북쪽일 수도 있는 거 아냐?"

 

속으로 '무슨 황당한 소리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 당신은 우리 집 주변에 있는 대학교를 다 아나? 서울이 북쪽이고, 청주가 남쪽인데 올라가는 게 논리적으로 맞는 거 아닌가?

 

하지만 우리 연구실은 집단 간 차별을 연구하는 연구실이었고, 그 예민한 반응들도 다 그럴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친히 아량을 베풀며 용서했다. 그래, 얼마나 쌓인 게 많았겠어. 


그렇게 3년 반이 흘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 준비를 하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까지 4번의 해가 바뀌고. 눈을 감으면 아른거리던 서울이 이제는 청주의 어떤 번화가로 바뀌어 간다. 그리고 나는 점점, 추앙을 받던 서울 사람에서, 모든 도시 간의 이동에 예민해져 가는 '지방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열리는 모든 학회는 서울에서 열렸다. 어디서 행사가 열린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교통비와 숙박비가 내 통장을 빠져나가는 상상을 하게 된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모두 "언제 올라오면 연락해~ 한번 만나자"라는 말로 끝이 났다. "그렇게 보고싶으면 너네가 와라 좀"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정작 나를 보러 청주까지 오면 숙식을 다 제공해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이럴 바엔 내가 올라가는 게 낫다. 

 

그래도 이런 잠깐의 내적 갈등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까짓거 나들이간다고 생각하며 합리화를 하면 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무언가에 도전하기 시작했을 때 드러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도전.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GRE라는 영어 점수를 만들어야한다. 워낙 공부하는 사람이 적어 서울에서만 강의를 한다. 대부분 유학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월화수목금 종일반을 신청하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다닐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도저히 딸 수가 없는 점수였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토요일반을 신청한다. (이 마저도 청주 사람이라 가능한 것) 하루에 모든 수업을 초 집중하여 듣는다고 해도, 매일 학원을 가는 것과 일주일에 하루만 학원을 갈 수 있는 것은 공부의 무게가 달라지는 일이다. 

 

두 번째 도전.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넣으니 면접을 보러 오란다. 당연히 모든 장소는 서울이다. 면접을 보러 버스터미널로 향하고, 총 3시간이 걸려 도착을 하고, 30분 동안 수다를 떤 뒤, 더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어 그냥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탄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다시 울리는 전화기. 

 

"내일 면접 가능하세요?"

 

당연히 취준생에게 거절이란 없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어 나는 같은 버스 같은 자리에서 다시 서울로 향한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보면 체력의 한계가 오기 마련이다. 이 에너지 소비가 나도 모르게 도전의 범위를 줄이는 데에 일조했을 것, 그리고 아주 작게나마 내 취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사실은 당연한 순리다.

 

몇 년이 지나 알았지만, '서울로 올라가다'라는 표현은 차별적인 표현이 맞았다. 강원도에서 서울로 갈 때도, 즉 지리적으로 서울이 더 남쪽에 있거나 강원도의 도시와 비슷한 경도임에도 불구하고 올라가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니 말이다.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60740)

 

이건 서러움이 맞다. 아무리 개인의 행복이 사람 마음에 달려있다고 해도, 마음이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그저 가진 것에 만족하면 된다는 이야기는 매일매일 휴대폰을 통해 공간을 초월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할 수가 없는 말이다. 

 

혜택과 차별을 오고가며 내가 무엇을 누리고 왔었는지, 그리고 물리적인 제약이 나의 욕망을 어디까지 빼앗을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았다. 무언가를 누린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수도권에 산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었다, 내가 누리는 것이 혜택이 되는 순간, 그것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든 것으로부터 박탈되었다. 


 

뒤셀도르프의 카니발 축제,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klaus_kim&logNo=220655143233

 

6개월 정도 독일의 뒤셀도르프라는 한 도시에서 산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30분이면 도시의 끝에서 끝까지 이동이 가능한 곳이었다. 청주보다 훨씬 작은 그런 도시. 

 

일 년에 한 번 있다는 큰 지역 축제가 열린 어느 날이었다. 분장을 한 사람들이 카니발 위에 올라가 시민들에게 사탕을 던져주면 그걸 마구 주워 담곤 했다.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방방 뛰어다니며 사탕과 초콜릿을 주워 다니던 그 때, 마치 축구장에 온 듯한 함성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뒤셀도르프! 뒤셀도르프! "

 

사탕을 나눠주는 사람이 뒤셀도르프라고 도시 이름을 외치면 사람들은 그에 맞춰 도시의 이름을 따라 불렀다. 생소했다. 왜 도시 이름을 외치지? 축구처럼 어떤 팀 대결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곤 옆에 있던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야, 한국으로 치면 수원 만세!! 청주 만세!!" 이런거 아니냐? 한국 도시로 바꾸니까 왜 이렇게 어색하지"


 

오늘 뉴스에는 이런 기사가 나왔다. 인덕원역 gtx 호재로 10억 아파트가 20억으로 뛰어. 

인덕원역은 내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인데, 이사를 나오니 집값이 이렇게나 뛰었다. 배가 아파 미칠 지경이다. 

 

우리가 도시를 기억하는 순간은 어떤 순간이 되어가고 있는걸까. 모든 기회가 있는 땅과 전혀 그렇지 않은 땅. 집값이 오르는 땅과 곤두박질치는 땅. 누군가는 버스를 타고 올라가고, 누군가는 내려가는 그런 땅. 

 

무려 4년을 산 도시를 마무리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차별'에 관한 것이라면, 무언가 슬픈 결말임에 틀림없다. 모든 것이 서울에만 빽빽하게 들어선 한국의 현실, 탄성으로 시작해 질투로 끝이 났던 은밀한 마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차별과 특권을 모두 경험하며 청주라는 도시를 온전히 느끼지 못했던 내 오만했던 순간들, 이런 엔딩으로 청주 살이를 매듭짓기까지는 구구절절한 기승전결이 있었다. 

 

이 기승전결의 결말에 이르러서야, 내가 도시를 보는 관점은 '차이와 비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걸 안다. 여기는 거기보다 이게 더 좋고, 이게 더 나쁘고, 나는 이게 더 좋고, 이게 더 싫고. 비교를 애초에 안하면 된다는 말은 허망하다, 하지만 매 순간 비교하는 마음은 고단하다. 허망함과 고단함 사이에서 나는 어떤 기억을 안고 떠날 것인가. 앞으로 거처갈 모든 도시에서는 과연 어디 쯤에 서 있을 것인가. 


청주가 풍겼던 향수, 들려준 이야기, 보여준 정경을 기억해 본다면 그 동안 나는 참 자유로웠다. 마음대로 웃을 수 있었고, 화낼 수 있었고, 슬퍼할 수 있었고, 사랑할 수 있었다. 

 

청주는 어떤 도시였나. 도시의 초입에 줄줄이 선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쌩쌩한 자동차들을 반겨주는 곳, 그 잎들 사이로 비추는 햇빛이 간간히 빛났던 곳, 맛집을 찾는 것 보다 예쁜 카페를 찾는 것이 더 성공률이 높았던 곳, 음식은 솔직히 별로인 곳, 지방에서 유일하게 국립현대미술관이 들어선 곳, 전국 어디를 가도 버스비가 2만 원을 크게 넘지 않는 곳,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때쯤 어디선가 "겨"라는 단어로 끝나는 정겨움이 들려오는 곳, 그리고 내가 보란 듯이 출발을 하다 새롭게 저물었던 곳, 그곳이 청주다.

 

언젠가 청주에서 축제가 열리고, 누군가 "청주 만세~~" 라고 말하면 이제는 함성을 질러볼 수 있을까. 아마 대답을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청주 사람들은 이렇게 소리칠 것이다.

 

"청주!"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청주에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참 많다
집 전체를 자주색으로 칠한다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충북대에 숨겨진 무용한 공간
청주의 한 번화가 1
청주의 한 번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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