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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상물

<블라인드> 너가 아니면 안되는 단 한가지 완벽한 이유

by 윤춘 2021. 3. 24.

 

 

출처: http://www.movietok.kr/news/articleView.html?idxno=10246

 

 

세상의 나쁘고 추한 면만 보게 만드는 거울이 있다. 그 거울의 파편이 눈과 심장에 박힌 카이라는 소년은 오래된 친구 게르다와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카이를 놓을 수 없었던 게르다는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카이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홀로 얼어붙은 강가에 서있는 카이를 보며 게르다는 눈물을 흘리고, 뜨거운 눈물은 카이의 심장에 박힌 거울을 녹여낸다. 

<눈의 여왕, 안데르센>

 

영화 <블라인드>는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자신의 얼굴이 흉측하다고 생각하는 마리,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아 세상과 교류할 수 없는 자신이 통제가 되지 않는 루벤. 하지만 마리의 얼굴을 루벤은 볼 수가 없고, 누구도 제어할 수 없었던 루벤의 행동이 마리에게는 어린아이의 어리광 정도로 취급될 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던 자신의 문제가 서로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가고, 점점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한다.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같던 둘의 사랑은 루벤이 눈을 보이게 하는 수술을 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비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어머니의 반대, 자신의 얼굴을 보면 루벤 역시 도망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아마 이 모든 것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마리가 아직 가지고 있는 아픔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안 루벤은 사랑의 무게를 오롯히 받아내며 영화를 마감한다. 

 

이 이야기는 비극적이다. 하지만 비극적인 전개라는 수식어로 두 사람의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이들이 피어낸 감정이 너무 깊다.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이 영화만큼 사랑의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한 영화가 있을까. 

 

세상에는 수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지만, 그 중 설렘이라는 감정을 주는 사랑이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감정인 것 같다. 부모와 자식, 선생과 제자, 친구, 동료, 수 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제각기 다른 사랑을 하지만 연인이라는 사람과 나누는 사랑은 무엇보다 쉽게 시작하고, 무엇보다 허무하게 끝이 난다. 아마 다른 종류의 사랑은 두 사람이 만날 수 밖에 없는 '어떤 환경'이라는 요소가 바탕이 된 채로 나누는 사랑이지만, 연인과의 사랑은 찰나의 만남만으로도 성사될 수 있는, 말 그대로 '마음'이라는 날 것의 상태로 시작하고 유지하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내용이 다르다. 어떤 연인과의 사랑은 가볍고, 가볍고, 또 가볍다. 설레고, 설레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끝이 나 있는 사랑이 있다. 이와 달리 어떤 연인과의 사랑은 가볍지만 무겁고, 아프지만 행복하며, 설레지만 안정적이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을 점점 키워내고 있는 사랑이다. 

 

똑같은 설렘으로 시작해도, 각기 다른 마지막을 맺게 되는 것은 아마 아무리 '이유 없이 시작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어떤 이유들이 그 사랑에 붙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즉, 어떤 환경에도 바뀌지 않을,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 이유가 "사람들이 추하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너는 나를 받아줄 수 있어서" 라고 말하고 있다.

 

가끔 우리는 내가 너를 사랑하는 100가지의 이유를 나열하면서 이 사랑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타당성을 찾는다. 또는 내가 너를 사랑하지만, 이 사랑을 지속할 수 없는 100가지의 이유를 곱씹으며 사랑을 끝내야만 한다는 아픈 마음을 굳혀내기도 한다.

 

아마 그 중 많은 이유들은 나의 마음에 일절 상처도 주지 않을 완벽한 사랑을 원하는 마음에서 나온, 세상과 과거의 나의 경험이 만들어낸 기준들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사랑을 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이라는 것이 있을까? 아니,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는 하는 것일까?

 

때론 사람들은 9가지의 좋은 이유가 있어도 단 한가지의 문제 때문에 마음을 거두고, 9가지의 나쁜 이유가 있어도 단 한가지의 사랑때문에 자신의 모든 마음을 내어준다. 그 '단 한가지 이유'의 모습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내가 세상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그 한 가지, 그것만 있으면 모든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그 하나의 이유가 내가 그 사람을 원하는 바로 그 이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만의' 이유와 마음을 잘 들여볼 수록, 그 사람이 더 특별하게 여겨진다.

 

가끔은 너무나 많은 사랑들이 세상의 통념 속에서 지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루벤의 어머니가 마리가 루벤보다 나이가 한참 많다고 하여서, 얼굴이 못생겼다고 하여서 사랑을 반대하고 마리 역시 이러한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루벤을 떠나고야 만 것 처럼 말이다. 

 

'해야 한다'라는 생각. '외모가 좋아야 한다', '돈이 많아야 한다', '가정 환경이 좋아야 한다', '성격이 모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라면, 특히 내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그 기준은 과연 누구에게서 나온 것일까? 설령 그 기준이 과거의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격에서 기인한 기준이라 할 지라도, 그게 지금 현재 내 마음이 말하고 있는 것은 맞는가? 정말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어떠한지, 내가 그 사람이 좋은 순간과 그 순간이 왜 좋은지에 대해서는 미처 살펴보지도 못한채 두려움과 불안으로 범벅된 그 기준을 여기저기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미래의 내가 상처받을까 두려워 아직 오지도 않은 상상 속 칼날에 대비하며 멀쩡한 마음에 이리저리 반창고를 붙여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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