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Sand.
1. 유사(流沙: 바람이나 물에 의해 아래로 흘러내리는 모래. 사람이 들어가면 늪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오지 못함)
2. 헤어나기 힘든 상황
우리는 때로 어떤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고, 마치 원래 그래왔던 사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그 상황에 맞춰 행동 하기도 한다.
특히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처음 어떤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그게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할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을 때 더 깊숙하게 다가온다.
드라마 퀵샌드는 주인공 마야가 한 남학생과 사랑에 빠지며 점점 심리적인 늪에 빠지게 되는 모습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처음 마야와 크리스티앙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청소년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배경은 찬란했고 둘은 그렇게 점점 깊어져만 갔다.
하지만 크리스티앙이 아버지의 무관심과 폭력 속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았을때 마야는 어떤 책임감 뿐만 아니라 불안감과 사랑이 뒤섞인 소용돌이에 빠졌다. 드라마가 전개되며 크리스티앙은 점점 더 망가진 모습을 보이고 마야는 헤어짐을 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 둘을 둘러싼 친구들의 시선, 그리고 크리스티앙과 마야가 해결해야했던 많은 사건들은 둘을 더 고립시켰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마야를 고립시키고야 말았다.
아마 크리스티앙이 정신적으로 괴로워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일 때 마야는 정말 그만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야는 무엇인지 모르겠는 상황의 압박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크리스티앙 이라는 무덤에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된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쟤는 왜 크리스티앙과 헤어지지 못하는거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크리스티앙이 마야의 생일파티에서 마야를 망신주었을 때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마야가 크리스티앙과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단 한사람, 마야만이 그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생일파티가 끝나고 크리스티앙의 집으로 향했으며 마야는 절대 겪어서는 안되는 일을 겪고야 말았다.
무엇일까. 무엇이 마야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것일까. 이 드라마는 총기난사 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마치 마야라는 캐릭터가 특이한 사건을 겪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마야와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은 정말 많다. 심지어 본인도 모르게 우리도 이런 일을 겪고 있을 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벗어나야 하는 상황에 있는걸 알고 있는데, 나 자신만은 죽어도 모르는 그 늪에 빠져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런 늪에 빠지는 심리적 기제는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마음을 은밀하게 조작하여 그 사람을 조종하는 심리적 폭력이다. 특히 이러한 가스라이팅은 '너가 성격이 이상해서 그래' '네 잘못인데 왜 인정을 안하니' 등과 같이 책임을 그 사람에게 돌리는 말을 은연중에 계속 함으로써 그 사람이 심리적으로 자책을 하게 만들며 이뤄진다. 그리고 이렇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자존감의 하락을 경험하게 되어 상대방에게 더욱더 의존하게 되기도 한다.
마야는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계속해서 이런 가스라이팅을 경험했을 것이다. 크리스티앙으로부터의 비난, 그리고 그러한 크리스티앙과 헤어지려 했을 때 주변에서 오는 비난 등 모든 상황이 마야를 겨냥하고 있었다. 이는 크리스티앙이 잘못되면 마치 여자친구인 마야가 잘 돌봐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 시선까지 만들어 냄으로써 마야를 점점 더 옭아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을 당하는 상황이 실제로 다가 오면 의연하게 대처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남이 폭력을 당한 것을 보면 마치 쉽게 그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폭력 노출되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 조차 쉽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 폭력의 존재 자체를 먼저 세상에 알려야 한다. 세상에 폭력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은 정말 무한가지로 교묘한 방법을 통해 이루어 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언젠가 이런 폭력에 노출된 사람이 있을 때, 적어도 이것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아직 신체적 폭력 뿐만 아니라 특히 언어적 폭력에 굉장히 둔감한 나라다. 사회 전반적으로 겸손이 미덕인 나라여서인지남을 깎아 내리며 유머를 던지는 문화가 팽배하고, 스스로도 자신을 깎아 내리며 비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화의 흐름이 된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폭력의 시작점이며 심리적으로도 모두를 갉아 먹는 악습이다. 우리는 타인에게는 물론 자신에 대한 사소한 폭력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아주 작은 상처라도 엄살을 피우며 아프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멈추고, 나 자신도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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