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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몸과 마음

집에 있으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통영기행 1편

by 윤춘 2021. 4. 29.

2021년 4월 15일, 지원한 대학원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16번째로 들려온 날. 처음 유학을 결심한 3년 전부터 준비해온 것의 매듭이 겨우 그 모양으로 지어진 날이었다. 

 

유학에 대한 마음을 접고 나서, 미친듯이 한식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반찬과 국과 밥이 제 접시에 담겨 한상에 가득 펼쳐진 밥이 먹고 싶었다. 특히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접근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생선구이가 계속 생각났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내륙지역이라 그런가 생선구이를 잘 팔지를 않았다. 겨우 찾은 보리밥 집에서 가자미 구이를 주문하니 웬 밀가루가 범벅이 된 가자미 튀김이 나왔던 경우를 빼곤. 

 

그리고 10일 뒤, 나는 통영으로 향했다. 자신이 가본 여행지 중에 통영이 가장 좋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통영에 많이 간다더라 하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아래로 아래로 달려갔다. 

 

 

통영에서의 첫 식사. 

 

 

 

"몇 명이세요?"

"한 명이요"

굳이 검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1을 강조한다. 

 

"여기 2인분 부터 가능한데 괜찮으세요?"

 "네"

 

푸짐하게 나오는 반찬들, 하나하나가 바다 위에 널브러진 섬 같다. 그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숟가락과 젓가락은 정신을 못 차린다. 이 정도 반찬이면 2인분부터 시작하는 것이 용서가 된다. 

 

그리곤 뜬금없이 떠오르는 말.

 

'아, 집에 온 것 같다'

 


몇년 전부터인가. 오랫동안 혼자서 중얼거렸다. 침대에 누워서 몇 번을 되뇌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그리곤 10년 동안 전국을,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자유가 허락된 스무 살, 처음으로 들어간 모임은 국토대장정이었다. 나는 빠른 년생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 사이에는 "여기 19살짜리 스텝이 있데"라는 이야기가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돈이 별로 없어도 내일로 티켓만 있으면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걸 안 뒤로는 팔도를 나다녔고, 제주도 티켓 값이 기차 값과 비슷하다는 걸 안 뒤로는 그 섬을 또 밥먹듯이 다녔다. 이후로는 물 보듯 뻔하다. 2월 1일에 독일에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에 독일로 떠났다. 그것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그리고 6개월을 온 유럽과 아프리카 일부에 깃발을 꽂았다. 

 

이러니 집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리지, 싶다. 

아니. 나는 언제나 집에서만 집이 그리웠다.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하소연을 하면서 눈물을 보인 기억이 새록하다.

"어떻게 너는 수학여행을 가도 한 번을 전화를 안 하니"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어딘가를 '집'이라고 생각해본 게.

 

처음으로 내 집이라고 생각한 장소가 정작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머나먼 도시에, 그것도 2인분 이상만 주문이 가능한 식당이라니. 

 

지내온 3일을 되돌아봐도 통영은 그럴만한 도시였다. 불친절한 택시기사가 단 한 명도 없었고, 음식은 모두 진했으며, 시장에는 문학이 넘쳐났다. 조금만 언덕을 올라가면 훤히 보이는 바다와 산과 크레인들. 작은 도시라고 하지만 힘이 넘쳐나는 도시였다. 특히나 바다를 가르는 배들이 그렇게 용기 있어 보일 수가 없다. 

 

 

카페녘에서 찍은 통영과 거제 사이

 

 

하지만 아름다운 도시가 통영뿐이던가? 유난히 통영이 좋긴 했지만, 처음 방문한 식당을 제 집이라고 느낀 것은 의아하다. 

 


새로운 음식,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 처음 보는 것은 왜 이렇게 매력적인가. 그것은 실체가 없지만 묘하게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구석이 있다.

 

나 여기, 여기, 여기 가봤어. 이거도 먹어봤어. 누구도 만나봤는데.

 

경험을 많이 해본 사람은 그 경험에서 뭔가 깨달음을 많이 얻은 사람처럼 보이기가 쉬워서, 상대에게 여러 가지 경험을 나열하면 그래도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조금은 답변을 한 것 같아서, 아니면 스스로 뭔가 '하긴 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가 있어서. 그들에게 새로움은 자신을 보호하면서 세상에 맞서는 무기가 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모든 경험이 성장을 주지는 않는다. 중심이 굳게 세워진 잣대 위에 차곡차곡 경험과 사색을 쌓으며 나를 '완성시켜'가는 것과, 중심 없이 계속 새로운 자극에 '이끌려' 물수제비 위 돌처럼 세상 위를 떠다니는 방랑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나의 필요로 인해 내가 자극을 불러들이는 것과, 그저 그 자리에 서있던 가로등에 홀린 듯이 끌려간 뒤에, 나 이 가로등도 봤어!라고 외치는 것은 비참하게 다르다. 

 

더 슬픈 사실은, 빛에 스스로 달려들어 자신을 태워버리는 이 불나방들이 정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옆에서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 '경험은 많이 할수록 좋다', '나는 그렇게는 못 살 텐데. 정말 대단하다'며 피상적인 말을 늘어놓는다. 그래도 칭찬이니까 좋다. 여기저기 무용담을 말할 거리가 늘어난다. 나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정체성을 얻는다. 

 

그래서, 남들과 '어떻게' 다른데? 

 

대답할 수가 없다. 

 

"그냥 달라. 똑같지 않으니까 다른 거지"

 

어떤 말을 부정한다고 해서, 그 말이 긍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숙소 침대에서 보이는 통영 바다

 

 

하루를 마친 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OOO펜션으로 가주세요."

"혼자서 펜션에 묵으세요?"

"네. 왜요..?"

"혼자 오는 손님들이 펜션에 묵으시는 경우는 별로 없어서요. 다들 게스트하우스나 모텔 가시지"

 

펜션 주인 분도 똑같은 반응.

"한 분 더 오시죠?"

"아니요 혼자인데요"

"네??"

 

그렇게 놀라실 것 까진 없잖아요. 

 

바다와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펜션에서, 무려 베란다에 놓인 스파라는 사치를 부려본다. 욕조에 들어가니 억지로라도 전자기기에서 멀어질 수가 있다.

 

그러다 또 갑작스레 중얼거린다.

 

"왜 슬프지가 않지?"

 

사실 3월 말부터 모든 학교에서 떨어질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슬프기는 커녕 "나 붙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하면 그 많은 추천서를 써주신 교수님들께 사죄를 해야 하는 거겠지. 

 

3월 초,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첫 소식이 불합격이었던 그 매일의 일주일은 참아왔던 울음을 엉엉 쏟아낼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니까 나도 슬픔이 뭔지는 안다는 얘기다. 슬픈데 안 슬픈 척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먼 도시에서라도 생애 처음 '집'이라는 걸 느꼈다. 

 


 

 

제 정신이 없는 사람이 몸을 계속해서 허허벌판에 던져대는 것은 세계의 확장을 빌미로 자신을 유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중심이 없는 확장은 도피다. 나를 피하고, 현재를 피하고, 세상을 피한다. 

 

"유학" 자체가 꿈인 사람은 없는 것이다. 내 나라 밖에서 공부하는 것의 핵심은 '내 나라 밖'이 아니라 '공부'다. 하지만 내가 꿈꾸던 유학의 정체는 '공부'가 아니라 '내 나라 밖'이었음을 알았을 때, 그리고 내 마음은 나의 나라건 밖의 나라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유학은 더 이상 꿈이 될 수 없었다. 

 

내심內心, 외경外境이다.

내 안이 맑아야 바깥세상도 맑다. 내 마음을 알아야, 남의 마음도 안다. 내가 평화로워야, 세상이 보인다. 

 

'내심'은 어디서 찾나. 지금 여기서 찾는 거다. 마음은 구체적인 말이나 생각이나 사물로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냥 지금 여기서 내가 느끼는 그 마음이 내심이다. 그것을 찾기 위해 계속 질문해야 한다. 상태가 어떤지, 뭘 느끼고 있는지, 평온한지, 불안한지, 지금 여기에 있긴 있는지. 

 

그렇게 내가 좋아지고, 지금이 좋아지고, 세상이 좋아진다. 그제야 보인다. 10년의 도피생활 중에도 절대 놓지 않던 단 한 가지가 있었음을, 나를 온전하게 쏟아낼 수 있는 일이 항상 내 옆에 있었음을. 

 

더 이상 슬퍼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도피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명확해진다. 마음이 가지 않는 일은 더 이상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기로 했고, 지금 나는 슬프지 않은 게 아니라, 매우 행복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모든 힘은 부정이 아닌 긍정에서 나온다. 여기가 싫어서 가는 게 아니라, 거기가 좋아서 가는 거다. 그게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이걸 하고 싶어야 하는 거다. 마음에는 이유가 없다. 그게 전부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온전한 이유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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