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공무원 준비를 하던 친구가 "왜 공부를 하다 보면 자꾸 미워하는 사람 생각이 나지? 옛날에 싫었던 기억이 자꾸 생각나"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일정 시간 이상 공부를 하다 보면 못된 말을 했던 사람, 싫어하는 행동을 한 사람, 짜증 났던 경험, 창피했던 경험 등 부정적인 감정을 깨우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왜 자꾸 이런 생각을 할까' 자책하며 또 다른 괴로움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내가 힘들어서 그렇구나.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순간을 떠올려보면, 모두 '일정 시간' 이상 공부를 하고 난 이후였는데, 이는 곧 내 체력을 다 쓰고 난 이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즉, 몸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니 엉뚱한 생각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시작한 이후로 이런 경험은 아주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나다. 운동을 시작하고 처음 몇 분은 상쾌하게 시작을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잡생각이 머리를 울린다.
차라리 내 몸의 상태나, 감정을 느낀다면 그냥 인정하고 쉬면 된다. 하지만 내 상태를 알기도 전에 엉뚱한 생각이 마구 치밀어 오르는 상황이라면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내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엉뚱한 신체 반응이 나오는 일은 하루에도 몇 번은 벌어진다. 하고 있는 일을 멈추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뭔가를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르니 이런 현상이 더욱 빈번하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인정하기 힘든 상황에 부딪혔거나, 타고나길 잡생각이 많은 성격이어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런 경험을 하고 있을지도.
이유야 어찌 되었든, 매 순간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은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보다, 목표를 이뤄내는 것보다, 혹은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렇게 알아차리다 보면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과 진짜로 싫어하는 것이 더 명확해지고, 그러다 보면 책상에 앉아있는 걸 멈출 수 없어 갑자기 엉뚱하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거나, 배가 부른데도 계속 뭔갈 먹게 된다거나, 하염없이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거나,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라고 믿고 싶은 지금 내 얘기)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염없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매일 먹고 마시고 자다가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평생을 마감하면 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 사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자신도 모르게 뭔가에 홀려있는 것은 아닌지 매 순간을 돌봐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또한 좋아하고 싫어할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라, 내가 진정으로 그것을 좋아하고 있는지 싫어하고 있는 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오히려 힘들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수많은 사람과, 일과, 물건과, 이야기들 사이에서 나를 잃지 않는 것, 스스로 중심이 잡힌 상황에서 그것들과 적절하게 어우러질 줄 아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까지 해본 모든 일들 중에 가장 재밌고, 가장 뿌듯한 일인 것 같다. 이걸 직업으로 삼는다면 그 직업의 이름은 뭐라고 지을 수 있을까? 수행자? 어른? 아니면 그냥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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