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Why'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보낸 하루가 없다. 모든 이야기에 '왜?'라고 답한다. 모든 생각은 '왜?'로 시작한다.
하늘은 왜 파랗지? 너는 왜 그런 행동을 했지?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지?
아이들은 4살이 되면 모든 현상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왜(Why) 공격'을 시작하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공격력이 약해진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어째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왜 공격력'이 더 강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왜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할까?'
이유를 묻는다는 것은 무언가의 역사를 묻고 싶은 것이라. 그게 어떤 발자취로 그런 행태를 띄게 되었는지, 무슨 사건을 겪었길래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가 매 순간마다 궁금해 지는 것이라.
그래서 그것의 이유를 묻는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궁금하다는 것이고, 그것이 알고 싶다는 것이다. 그냥 흘려 보내기가 너무 아까워서, 밉던 좋던 도저히 그게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라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을 아꼈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이게 도대체 어디서 태어났나, 부모님이 누구니, 형제는 누구니, 너는 누구니. 묻고 묻고 또 묻는다.
하지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도 사랑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몰랐다.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그저 인정해주고,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 역시 사랑이 될 수 있음을 몰랐다.
어느 날은 상담심리학 강의에서 '왜'라는 질문은 다소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질문을 할 때는 '왜'가 아니라, '뭐 때문에 그랬는데?'라고 물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으로 '왜'라는 말에 감정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궁금해서 그랬어라고 이야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아픔이 될 수 있고, 설사 죽어있는 사물이라 할지라도 탄생의 역사 따위는 묻지 않아도 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역사가 너무 처참했었다면? 혹 그 과거의 역사보다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봐주길 원한다면?
'왜'라는 사랑의 가장 큰 희생자는 나였다.
'왜 그런 선택을 했어?'
'왜 그렇게 살았어?'
'왜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생각보다 왜라는 질문은 힘이 없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이유를 묻지 않기로 하자.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주기로 하자.
왜라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당신을 그저 흘려, 보아주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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