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겨울왕국2는 전작의 흥행과 더불어 많은 수의 관객을 동원했다. 많은 영화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여성과 남성의 로맨스적인 사랑에서 찾은 반면, 겨울왕국은 자매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이야기 했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러한 겨울왕국의 여성주의적 메세지는 후작에서 더욱 강화된다. 겨울왕국2는 엘사의 능력이 단순히 세계를 다스리는 왕을 넘어서, 자연과 함께하는 존재가 되며 더욱 큰 인물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여성을 자연과 결합하여 자연해방과 여성해방을 같이 이야기하는 에코페미니즘과도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여성과 자연을 하나의 범주로 엮어 여성에 대한 관점을 자연의 위대함 혹은 자연에 대한 착취 등과 같이 이야기하는 흐름은 많은 곳에서 드러난다. 이는 여성이 출산과 재생산이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여성은 곧 '자연을 만들어내는 창조자'라는 관점을 중점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하며, 자연스럽게 자연의 위대함이 곧 여성의 위대함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사례는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이, 우리가 출산을 한 여성에게 붙여주는 가장 흔한 수식어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머니는 위대하다"
어머니는 생명을 낳고, 그것을 길러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이를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은 '위대하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와 정 반대로, 생명과 출산을 '저주'라고 이야기한다. 생명을 낳는 것은 쾌락과 본능을 이기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며,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즉 생명은 또 다른 죽음의 탄생인 것이다.
이를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영화는 바로 '안티크라이스트'이다. 이 영화에서 섹스는 죄스러운 것으로 나오며, 이 섹스는 죽음을 낳는 고통, 즉 생명을 탄생시키는 악으로 비춰진다. 이 영화에서 생명은, 고통이자 저주다. 그리고 그 생명을 낳는 여성은 '악마'다.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장면과 메세지를 주었다며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가 주고자 했던 생명, 출산, 여성에 대한 충격적인 관점이 과연 그토록 새로운 것일까?
몇년 전, 가수 자우림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의 글을 썼고, '삶은 저주다' 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이에 깊은 동감을 표시 했다.
흔히 부모가 되어야 부모의 깊은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부모가 되어 나는 부모의 마음이 아닌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겪은 부모들을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부모가 아니었다면 아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감사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서만 타당한 이야기.
어떤 아기도 인간 세상에 태어나기를 원해서 생겨나지 않는다.
인간을 만드는 것은 순전히 부모의 일방적인 욕심이다.
내가 아이를 갖기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낙원같은 곳 어디선가 천사들과 아픔도 두려움도 모른 채 머물고 있었을 투명한 영혼.
그러므로 부모가 된 인간은 아이에게
가능한 최대한의 행복을 선사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나는 새삼 타인의 행복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매 순간 기꺼이 떠안는다.
그리고 이 무겁고 무거운 책임이 오히려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이러한 발언은 아마 효도를 중시하는 동양에서는 더욱 금기시되는 이야기 이겠지만, 유교의 관념이 조금씩 사라지고, 또 취업난과 여러가지 악재들을 겪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나를 태어나게 했다", "태어난 것은 저주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행복했을 것이다" 등의 이야기가 점점 퍼지고 있는 듯 하다.
이뿐만 아니라, 어떤 페미니즘은 출산을 '여성이 짊어질 최악의 벌'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하며 어떠한 철학자들은 삶과 성, 그리고 죽음을 한 범주로 묶어서 이야기를 펼쳐나가기도 한다.
출산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인 관점은, 정말이지 '엄마'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도 많이 닮아있다. 우리는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해 "집에서 애나 보는 주제에" 라는 식으로 쉽게 이야기하거나, "아줌마"라는 단어를 통해 너무나 우스운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여자는 성녀 아니면 창녀"라는 관점과도 많이 닮아 있다. 자신을 기꺼이 돌봐주고, 아이도 낳아주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성녀'임과 동시에 내가 아니라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하거나, 혹은 나를 유혹해 재산을 뺏어갈 것만 같은 악마와 같은 '창녀', 두가지의 범주로 배정되는 여자에 대한 관점과 정말 많이 닮아 있다.
즉, 나의 아이를 낳아주거나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는 어머니는 '대단하고 위대한 어머니', 이지만 동시에 남의 아이를 낳아주고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는 '집에서 애나 보는 아줌마'인 것이다.
이렇게 대치시켜 이야기해보니, 우리가 출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점이 과연 무엇에 대한 관점이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삶, 자연, 죽음 등의 여러가지 현상과 뒤섞어서 '아이를 낳는 것은 ___다!' 라고 정의하고 있는 우리는, 과연 출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혹은 출산을 인질로 잡고 본인의 심리적 불안이나 기대를 투사하고 있는 것일까?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여성에 대한 혐오가 발생한 이유는 과거에 인구 통제가 안되었던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억제하고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출산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시선은 "우리의 사회에 도움이 되냐"를 기준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인구가 너무 많은 사회라면 자신의 재산을 빼앗아가는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는 것이고, 인구가 적은 사회라면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노동력을 만든 여성에게 찬양의 박수가 돌아가는 것이다. 실제로 북유럽 국가에서 여성인권이 높은 이유는, 날씨가 너무 추워 노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결국 출산에 대한 시선도, 여성에 대한 시선도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이는 다시 말하면 출산은 자연의 위대함을 그대로 되물림한 신비로운 과정도 아니며, 우리의 삶을 시작시킨 저주도 아니라는 것이 된다. 그저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이다. 마치 우리가 먹을 것이 필요하면 음식을 먹기위해 여러가지 노동을 하고, 잠을 잘 자기 위해 집을 짓는 것과 같이 삶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하나의 부분일 뿐이다. 다만 그것을 할 수 있는 성별이 여성밖에 없기 때문에, 출산에 대한 태도와 여성에 대한 태도가 섞여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여러가지 우대, 편견, 차별'등으로 발휘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출산이 무언가 특별할 것이라는 시선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하나의 힘든 노동과 같은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무언가가 많이 달라질까? 사회는 점점 변화하는데, 여성이나 출산에 대한 생각은 변화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이 있을까. 이제는 출산과 여성, 혹은 생명까지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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