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모두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걸음이 빠른 사람, 일처리가 느린 사람, 요가를 좋아하는 사람, 러닝머신 위에서 시속 13km로 뛰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다들 제 체질과 성격에 맞는 속도로 삶을 살아가며 저마다의 안정을 찾는다.
지금까지 나는 조금 빠른 템포의 사람이었다. 음식도 조금 빠르게, 흥분하면 속사포로 튀어나오는 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생각들. 당연히 일도 해결해야 하는 순서를 계획하며 절대 정해진 기간에 늦어지는 일이 없이 진행을 했고, 덕분에 내 옆에는 항상 많은 일이 쌓여있었다.
이런 성미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핀잔을 듣는 일도 없으며, 그럴싸한 성과가 따라왔고, 성취감은 항상 높았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흘러, 교수님께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아닌, 진짜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수행해보고. 학교에서 많은 활동을 하며 만나게 된 '지인'들이 아닌, 진짜 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자 했을 때.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잘 실천해 왔던 것들을 나는 이상하게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나 지식으로 가득 찬 어떤 행동이 아니라, 정말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을 내가 모른척하고 (혹은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양치나 세수를 할 때 옷에 물을 튀기지 않고 깔끔하게 해야 한다던가, 힘들면 조금 쉬어주어야 한다던가, 누군가 나에게 충고를 하면 그걸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런 아주 상식적인 것들 말이다.
이런 현상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때로는 큰 실수를 지속적으로 저지르게 되면서, 그렇게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아주 느린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내가 세상을 대하는 속도는 아주 빨랐지만, 실제로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남들보다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교육이 부족했던 건가? 라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냥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세상과 조금은 어긋난 상태로, 그래도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남들 눈에는 이게 다 보였나 보다. 뭔가 열심히 살기 시작한 대학시절 이후,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조급하게 행동하는 것만 조금 고쳐봐라"라고 충고를 해주었다. 당시에는 단순히 "성격이 급하게 태어난 걸 어떻게 하냐!"라고 생각했지만, '급한 성미', '조급해 보이는 행동'의 진실은 '빠른 행동'이 아니라, 실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를 넘어서서 뭔가를 하고 있음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항상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는 것이 불편했던 이유가. 고양이를 보면 단순히 좋아함을 넘어서 경외심을 느꼈던 이유가. 느리고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는 사람을 보면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여겨졌던 이유가. 아마 내 스스로가 '천천히, 정갈하게' 행동하고 싶어서 였던 것 같다. 아니면,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깊은 무의식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남은 건 내가 원하는 것과 하고 있던 행동 사이의 조율일 것이다. 많은 시행착오가 그렇듯 때로는 연습이 잘 되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까지 계속 넘어지면서 살아온 거 뭐... (실제로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많이 부딪히고 넘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이 과정을 앞으로도 잘 기록하고 기억해서 과거에 내가 했던 생각을 나중에라도 까먹지 않게 해야겠다.
시시콜콜한 일기를 마치며. 오늘도 힘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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