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라는 질문은 항상 당황스러웠다.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이 이상형이라는데. 정의부터 뭔가 너무 이상적이다. 완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내가 바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실제 존재할지에 대한 기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고 하지 않는가. 정말 객관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에 완전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이상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꼭 배우자에 대한 탐색이 아니더라도, 동료로서, 친구로서 어떤 사람들을 내 옆에 둘 것인지, 그리고 내 옆에 두어왔는지에 대한 질문도 포함시켰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할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봐도 들이댈 잣대가 너무 많다. 외모, 성격, 재산, 직업 등등 따질게 너무 많다. 그러면 따질거 다 따져서, 세상에 좋은 것이란 좋은 것은 다 모아두면, 그 사람은 '내가 생각하기에' 완전한 사람이 될까?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초점을 상대방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두어 보는 것이다.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 나는 어떤 가치가 가장 중요한 사람인가?"
그리고 이 행복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바로 완전한 사람은 아닐까?
그렇게 곰곰이 생각을 해본 결과, 나는 '대화'와 '성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무언가 배우고 깨달아 가는데 사용하고 있었고, 이 부분을 누군가와 공유할 때 가장 행복했다. 그러니까 세상에 모든 조건들이 사라져도 이 순간만 있으면 살 수 있겠다 싶은 순간이 나에게는 "성장하고, 대화하는" 순간인 것이다.
하트시그널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다. 이상형이 무엇이냐는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좋다. 그냥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이 진짜로 귀담아 들리는 거야" 라고 답했다.
참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우선, 나는 누군가 '이상형이 뭐야?'라고 물으면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상형이라는 것은 허구의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저렇게 명확하게 대답하기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대화가 귀담아 들린다'라는 말이 참 의아했다. 대화를 하면 당연히 들리지, 그게 안들리나?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화와 성장이라는 두 키워드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제서야 나는 이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말을 주고 받는다. 꼭 대면으로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유투브를 보며,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우리는 타인과 생각을 나눈다.
하지만 그 중 정말 그 사람의 말이 들리고, 나의 말을 그 사람이 듣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경우, 혹은 그 사람의 이야기가 들리지가 않고 오로지 내 말만 하고 싶어지는 경우. 혹은 둘이 대화를 하더라도 왠지 모르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 많은 경우의 수 중에 서로의 말이 서로에게 들리는 경우는 단 한번일 뿐이니까 말이다.
또 다른 가치관은 성장이다. 아무리 개차반인 사람이어도, 더 나아지려는 모습을 보이면 나에게 그 사람은 매력적인 사람이다.
나를 더 발전시키려는 '성장'이라는 가치관의 기본 전제는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현재의 모습이 좋은 모습이 아니라는 판단을 스스로에게 내려야 하고, 지금의 내가 해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하여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나를 버려야 우리는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나를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것은 참 재미있는 자극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성장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은 오래된 것을 버리고 그냥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노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보고, 받아들이고, 체험하는 순간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보다는, 그저 어떤 재미있는 자극이자 놀이로서 기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장에는 대화가 참 중요하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상담의 원칙은 상대방과 진심어린 대화를 하는 것이며, 나와 너를 받아들이는 진정한 대화 속에서 우리는 성장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대화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정보에 내 기존의 생각을 덧입혀 상대방에게 돌려줌으로써 상대방 역시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된다. 더불어 우리는 절대 타인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이 제공하는 모든 정보는 '새로운 것'이 된다.
그렇게 너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성장한 내 모습에는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너'의 모습이 녹아져 있다.
현재의 내 모습에는 과거에 나와 수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가족들, 친구들, 혹은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아마 나는 지금까지 모든 내 이상형理想型들과 살아온 듯 싶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이야기가 나에게 녹아들어올까. 나는 도대체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변화한 내가, 사실은 어렸을 때의 나의 모습과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면, 나는 결국은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그렇게 성장해 왔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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