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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마음과 감정

왜 문학은 우울한가

by 윤춘 2018. 12. 2.

출처: yes24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 집⟩ - 기형도


가끔 소설과 시를 읽으며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이 있다. 왜 이렇게 작가들은 우울할까? 내가 우울한 작품만 읽어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너무 많은 '순수 문학' 작품들이 부정적인 정서를 주제로 삼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위의 시가 실린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시집에서 김현 평론가는 좋은 시인에 대해 "그의 개인적・내적 상처를 반성・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좋은 시인에 대한 정의에서 '보편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가 궁금했다면, 요즘에는 아무래도 '개인적・내적 상처를 반성・분석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 진다. 


시인은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상처를 받은 이만이 시인이 될 수 있는가? 


물론 이렇게 대놓고 물어본다면 모두들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읽은 많은 시인들은 상처를 담고 있었다. 심지어 소설 역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순수 문학 작품들은 대부분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마 문학계열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이유에 대해 "시대의 아픔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아픈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모습이 담긴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경향이 높을 것이다" 등의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이 갖고 있는 정서와, 그것을 담아내는 문학 사이의 관계를 조금은 메타적으로, 즉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관찰하며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 물론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출처: http://news.donga.com/3/all/20130827/57264962/1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한 퓰리처상 수상 시인 실비아 플러스>



작가와 문학 사이의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파헤치기 위해선 우선 문학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문학이란 무엇일까? 시는 개인의 감정을 담는 것이고, 소설은 개인의 서사를 담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해도 괜찮은 것일까? 


국어사전에서는 문학을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 그 감정이나 사상을 얼마나 남들도 잘 느껴지게 언어적으로 표현하는가가 좋은 문학과 좋지 않은 문학을 가르는 하나의 기준일 것이다. 


여기서 심리학적으로 주목해봐야 할 지점은 바로 '표현'이다. 문학은 언제나 작가의 감정과 생각을 '쏟아내는'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다. 즉 작가들은 문학을 쓰며 언제나 자기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고, 그것을 첨예하게 표현하는 것이 평생의 일인 사람들인 것이다. 



출처: https://dailytitan.com/2018/03/slam-poetry/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 문학은 부정적인 감정 표현에 익숙할까? 해답을 찾기 위해 이제 문학과는 전혀 별개인, 심리학적인 이야기로 이 문제를 따라가보자. 


심리학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정'에 대한 연구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심리학은 예전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뿌리를 잡고 있었다. 특히 임상과 상담이 주를 이루는 심리학에서 '사람들을 치료해야 한다'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픈 감정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최근들어 긍정심리학, 행복심리학이 두각을 내고 있다고 해도 아직 심리학은 부정적인 감정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는 과연 심리학만의 문제일까? 언젠가 곰곰히 '행복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다. 불행? 하지만 불행한 것은 어떤 부정적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많이 쓰이는 말이지, 행복에 정확히 반대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행복하다라는 감정의 반대말은 굳이 찾자면 '부정적인 감정' 정도 밖에 찾을 수가 없었다. 


즉 모든 긍정적인 감정을 통틀어서 표현하는 데에는 '행복'이라는 말이 존재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기분이 좋으면 '행복하다'라고 얼버무리며 표현한다. 하지만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우리는 '나 불행해' 라는 식으로 얼버무리지 않고, 조금 더 분석해서 세밀한 감정을 표현하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냥 떠올려 보아도 '나 우울해' '나 불안해' '나 걱정돼' '나 짜증나' 등등..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일상 단어는 굉장히 많지만 긍정적인 표현은 그닥 많지 않다.


출처: https://www.google.co.kr/url?sa=i&source=images&cd=&ved=2ahUKEwih9ujUjIHfAhWCvbwKHVPHDZ0Qjhx6BAgBEAM&url=https%3A%2F%2Fwww.smithsonianmag.com%2Fsmart-news%2Fdifferent-emotional-states-manifest-in-different-spots-in-the-human-body-180948225%2F&psig=AOvVaw0bjWN6uwAT2CTxguE0hOfy&ust=1543838450707059

<감정 상태에 따른 신체의 열 변화. 여기서도 긍정적인 감정은 그 개수가 확연히 적다.>


왜 부정적인 것은 세밀하게 분석되지만, 긍정적인 것은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게 될까?


가장 쉬운 분석으로는 사람이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것은 자신에게 위협적인 상황이 온 것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이를 해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감정은 사실 좋은 감정이긴 하지만 그것을 분석해서 제거하거나, 혹은 더 부풀리거나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일까,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사람들은 더 세세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 반대로 행복할 때는 슬플 때에 비해 시야와 주의가 더 넓어진다(Moriya & Nittono, 2011). 이에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하면 사람들은 먼 미래의 목표 등을 더 많이 신경쓰지만,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한 사람들은 가까운 미래나 지금 현재의 일에 더 집중하게 된다(Labroo & Patrick, 2009).


이는 이 전에 <절망은 나의 힘>이라는 글에서 이야기 되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로 볼 수있다. 


"실제로 사람은 긍정적인 기분보다 부정적인 기분을 느낄 때 세상을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바라보게 된다(Soldat & Sinclair, 2001). 이런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에, 부정적인 기분을 느끼는 사람은 타인이 더 이해하기 쉬운, 즉 소통이 잘 되는 의사전달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Forgas, 2002)."


또한 부정적인 감정은 그 감정의 자극때문에 당시의 기억을 더 생생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Mather & Sutherland, 2009).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문학이 왜 부정적인 감정을 담을 수 밖에 없는지, 혹은 부정적인 감정을 담는 것이 수월할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문학이라는 예술적 특성, 세세한 감정을 잡아내고 이를 전적으로 언어를 통해 표현해야 한다는 그 장르적 특성은 우울과 불안에 특화된, 혹은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한 통로인 것이다. 


출처: https://honcierge.jp/articles/shelf_story/1646





물론 문학적인 글을 쓰는 데에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한 심리적 효과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잘 관찰하고, 다듬고, 내 맘대로 주물러도 보는 그런 능력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우울하다고 해서 모두 글을 잘 쓸 수 있다면 세상에는 훌륭한 작가가 정말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능력은 또한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것을 심리학적으로 혹은 뇌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일 것 같다. 세상 사람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이 예술가의 뇌구조가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기는 하겠는가. 그저 우리는 '저 사람들 이상해'라며 손가락질 하거나, 어떤 신비스러운 존재를 봤다는 듯한 생각, 혹은 그저 무관심하게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영역인 것 처럼 무시할 뿐이다. 그러다가 가끔씩, 아주 가끔씩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소스라치며 다가올 때, 그 파도에 잠겨 내 마음을 한 장씩 들춰도보고 찢어도보게 해주는 한 안식처로 그저 오래오래 남겨두고 싶은 것, 그게 문학인 것 같다.




출처: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김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Moriya & Nittono, Effect of mood states on the breadth of spatial attentional focus: an event-related potential study, , 2011

Labroo & Patrick, Psychological Distancing: Why Happiness Helps You See the Big Picture,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2009

Mather & Sutherland, Arousal-Biased Competition in Perception and Memory,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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