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이야기/몸과 마음22 친구,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통영기행 2편 "안구 테러리스트"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좋아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니 본인들의 안구를 좀 지켜달라며 저런 무례한 별명을 붙여줬다. 아 혹시 내가 스스로 눈을 테러한다는 의미인가? 문자에 빠져 사는 사람에게 이미지는 맹점이다. 나에게 타인의 매력은 오로지 대화와 생각의 영역에서만 나고 자란다. 그래서인가. 내 옷차림과 화장과 심지어 손톱을 자르는 모양에도 체계라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노력은 열심히 하는데 뭔가 삐뚤빼뚤하다. 이렇게 문자와 이미지는 서로 대립의 관계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것을 보고도 딴 얘기를 하고 있는, 영 대화가 통하지 않는 친구처럼 말이다. 하지만 불통의 관계라고 하기엔 둘은 해도해도 너무 붙어 다닌다. 미술 작품 아래에는 항상 설명이 붙어 있다. 글이 있는 곳에는.. 2021. 4. 30. 집에 있으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통영기행 1편 2021년 4월 15일, 지원한 대학원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16번째로 들려온 날. 처음 유학을 결심한 3년 전부터 준비해온 것의 매듭이 겨우 그 모양으로 지어진 날이었다. 유학에 대한 마음을 접고 나서, 미친듯이 한식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반찬과 국과 밥이 제 접시에 담겨 한상에 가득 펼쳐진 밥이 먹고 싶었다. 특히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접근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생선구이가 계속 생각났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내륙지역이라 그런가 생선구이를 잘 팔지를 않았다. 겨우 찾은 보리밥 집에서 가자미 구이를 주문하니 웬 밀가루가 범벅이 된 가자미 튀김이 나왔던 경우를 빼곤. 그리고 10일 뒤, 나는 통영으로 향했다. 자신이 가본 여행지 중에 통영이 가장 좋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통영에 많이 간.. 2021. 4. 29.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고 옆엔 엄마가 있었다 친한 후배와 새벽 4시까지 술을 먹고 다음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침대에서 기어 나올 수 있었다. 엉망진창인 거실. 소주 한 병과 맥주가 하나 둘 셋.. 열한 캔?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심지어 이건 2차였다고. 그 와중에 배는 고파서 국밥집으로 기어가지만 결국 절반을 채 못 먹는다. "학생 왜 이렇게 남겼어" "제가 속이 안 좋아서.. 술을 너무.." 처참한 컨디션에 변명도 끝을 맺질 못한다. 다시 집에 기어와 침대로 직행한다. 몸도 흐느적 정신도 흐느적. 한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안 떴는데 눈 앞에 뭐가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슈퍼싱글 사이즈의 침대를 꽉꽉 채워낸 4종류의 베개들. 바스락거리며 한쪽 다리만 덮고 있는 흰 이불더미. 그리고 정말 피곤할 때만 찾아오는 축 늘어진 몸과 동시.. 2021. 4. 24. 설렘, 서늘하게 소름 끼치는 우리는 매 순간 살아 숨쉬기를 원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죽은 듯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살아 있지 않은 것 같은 무료함과 권태로움, 그 사이에서 편안함이라는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어떤 감정은 단 한순간의 죽음도 용납하지 않는다. 바로 설렘으로 시작한 사랑이다. 너무 생동적이어서, 잠을 자는 순간에도 깨어있다가, 새벽이 오면 갑작스럽게 눈이 번뜩 뜨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잠들지 못하는 하루.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유는 수백 가지 수천 가지. 붙일 이유가 차고 넘쳐서 수많은 목록을 더듬거리다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그렇게 너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환상이라는 눈덩이로 굴리고 굴려가며 내 일상을 빈틈없이 채울 때까지 키워가는 것이다. 설렘은 다행스럽게도 그렇게까지 끈질기지를 못한다. 현실적인 이유로.. 2021. 4. 24. 이토록 어려운 거절과 너무나도 쉬운 평화 https://youtu.be/-KwO245iv3s "뭐를 해야 할지보다 뭐를 안 해야 할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콩쿠르 이후 3년 동안 가장 하기 힘들었던 것은 거절하기였다. 하기 힘들었지만 제가 원치 않거나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은 거절하려고 노력했다." - 피아니스트 조성진 수요일 아침, 꼭두새벽부터 어떤 불편함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하기 싫어!!!!!!!" 지난주 일요일, 지인이 나에게 어떤 제안을 했다. 매우 쉬운 작업이고, 1,2시간만 시간을 쏟으면 되는 일이었지만, 나를 온전하게 쏟지 못할 것 같다는 직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거절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에 우선은 묵묵히 마음 구석탱이에 제안을 밀어두었다. 그래,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자. 성급하게 나서지 말자... 2021. 4. 21. 그저 인정하고, 인정하고, 인정하기 지나고 나야 보이는 것이 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그때 그렇게 할 걸' 하는 후회 혹은 '그때 그렇게 하길 잘했어'라는 만족감. 특히나 과거의 행동이 어떤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났을 때, 후회와 만족감의 폭은 더욱 깊어진다. 나는 대부분 '후회'를 선택했다. 머리로는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며 합리화를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의 과거에 대해 물으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기 바쁘다. 그래, 이제야 인정하지만 나는 내 과거가 부끄럽다. 전공을 두번이나 바꾸고, 하고 싶은 직업은 왜 그렇게 매번 바뀌는지. 결국 남들 다 다닌다는 회사는 29살이 될 때 까지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니, 그냥 가지 못한건가? 너무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해온 것 같아. 조금 기다렸다가 더 좋은 걸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2021. 4. 19. 이상형理想型, 그리고 대화와 성장의 상관관계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라는 질문은 항상 당황스러웠다.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이 이상형이라는데. 정의부터 뭔가 너무 이상적이다. 완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내가 바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실제 존재할지에 대한 기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고 하지 않는가. 정말 객관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에 완전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이상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꼭 배우자에 대한 탐색이 아니더라도, 동료로서, 친구로서 어떤 사람들을 내 옆에 둘 것인지, 그리고 내 옆에 두어왔는지에 대한 질문도 포함시켰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할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봐도 들이댈 잣대가 너무 많다. .. 2021. 4. 6. 사실 당신은 아주 느린 사람이었던거야 사람에게는 모두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걸음이 빠른 사람, 일처리가 느린 사람, 요가를 좋아하는 사람, 러닝머신 위에서 시속 13km로 뛰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다들 제 체질과 성격에 맞는 속도로 삶을 살아가며 저마다의 안정을 찾는다. 지금까지 나는 조금 빠른 템포의 사람이었다. 음식도 조금 빠르게, 흥분하면 속사포로 튀어나오는 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생각들. 당연히 일도 해결해야 하는 순서를 계획하며 절대 정해진 기간에 늦어지는 일이 없이 진행을 했고, 덕분에 내 옆에는 항상 많은 일이 쌓여있었다. 이런 성미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핀잔을 듣는 일도 없으며, 그럴싸한 성과가 따라왔고, 성취감은 항상 높았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흘러, 교수님께 제출해야 하.. 2021. 3. 8. 가장 주관적인 것이 가장 객관적인 것이다 -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방법 얼마 전, 어떤 사람과 작은 이별을 했다. 물론 지금도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이지만, 이별을 할 당시 나와 그 사람의 마음은 모두 지옥이었다. 그 사람이 떠나간 지 몇 개월이 지나고,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겼을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의 행동은 사실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당시 굉장히 성취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었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반대로 많이 느긋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조금 삶에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관계가 어떻게 점점 힘들어졌는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인생을 더 보람차게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었다. 아마 그.. 2021. 3. 3. 나는 내가 편안한가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답 없이 추상적인 질문을 던진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대학시절 들었던 교양 강좌에서 처음으로 던져진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몸이 나인가? 몸의 세포는 몇 년, 혹은 몇 개월 만에 모두 사라진다. 내 성격이 나인가? 환경에 따라 또 계속해서 바뀌는 것이 성격이다. 내 생각이 나인가? 생각은 하루에도 수없이 변하는 것이 생각이다. 그 어떠한 단어도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답할 수 없다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돌이켜 보면 질문의 유형만 바꾸어가며 수년간 '나'라는 존재에 대해 탐색의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나?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을.. 2021. 2. 21. 이전 1 2 3 다음